
영화 크리에이터를 보기 전에는 ‘AI가 인류를 위협하는 뻔한 SF’라고 생각했지만, 초반 10분 만에 그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느꼈습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익숙한 공식을 비틀며 관객의 기대를 뒤집는 연출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액션 SF를 넘어 인간과 AI의 공존 가능성이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가 핵심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 <크리에이터> 영상미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충격받은 건 영상이었습니다. 3억 달러짜리 블록버스터처럼 보이는데, 실제 제작비는 8,000만 달러였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촬영 방식 자체가 파격적이었습니다.
가렛 에드워즈 감독은 소니 FX3라는 프로슈머 카메라로 전체 분량을 촬영했습니다. 여기서 프로슈머(prosumer)란 전문가용(professional)과 소비자용(consumer)의 중간 등급 제품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일반인도 구매 가능한 가격대의 카메라입니다. 수억 원짜리 하이엔드 시네마 카메라가 아닌 이 카메라로 대형 블록버스터를 찍었다는 건 영화 업계에서도 전례 없는 시도였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아나모픽(anamorphic) 렌즈 방식으로 2.76:1이라는 극단적인 와이드스크린 화면비를 구현했습니다. 아나모픽 방식이란 일반 렌즈보다 가로 방향으로 더 넓은 화각을 담아내는 촬영 기법으로, 영화적인 깊이감과 렌즈 플레어가 특징입니다. 일반 극장 화면비가 보통 2.39:1인 것을 감안하면, 2.76:1은 시야 양 끝이 거의 시선 밖까지 펼쳐지는 느낌을 줍니다. IMAX로 보신 분들이라면 그 압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공감하실 겁니다.
크로마키(chroma key) 합성을 최대한 줄이고 실제 동남아시아 현지 로케이션에서 촬영한 것도 영상미의 핵심이었습니다. 크로마키란 초록색 또는 파란색 배경 앞에서 촬영한 뒤 배경을 디지털로 대체하는 기법인데, 이를 줄이고 실제 장소에서 찍으면 빛과 질감이 훨씬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래서 화면에서 풍기는 질감이 다른 SF 영화와 달랐던 겁니다.
이 영화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 후보에 오른 것도, 제77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같은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린 것도 그냥 나온 결과가 아닙니다.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의 시각적 효과를 뽑아낸 방식 자체가 영화 기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사이트).
오리엔탈리즘
제가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마음에 걸렸던 지점은 바로 이 ‘뉴 아시아’라는 공간의 묘사 방식이었습니다. 설정상으로는 일본, 대만, 동남아시아, 인도 일부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문화권이지만, 실제 화면에 담기는 풍경은 베트남이나 태국을 연상시키는 동남아시아의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얹혀 있는 언어는 일본어이고, 문화적 맥락 역시 특정 국가에 뿌리내리지 않은 채 뒤섞여 있습니다. 이 어색한 조합은 단순한 미술적 선택이라기보다, 동양을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시선의 결과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동양을 묘사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맥락을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동남아시아의 실제 공간은 등장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야기의 주체라기보다 배경으로 존재하고, 미래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는 장치처럼 기능합니다. 이러한 연출은 의도와 관계없이 관객에게 묘한 거리감과 불편함을 남깁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문화적 재현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에는, 이러한 방식이 더 이상 중립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국내 SF 커뮤니티에서도 이 지점이 강하게 비판되었고,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지적되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한 설정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이야기를 만들고, 누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관객이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크게 좌우합니다.
AI 인간성
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머릿속에 오래 남았던 것은, AI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AI도 의식을 가진 존재라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화 속 알피와 조슈아의 관계는 단순한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를 넘어, 감정적 유대와 윤리적 책임이 얽힌 복잡한 관계로 그려집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몇 년 전 힘든 시기를 지나며 대화형 AI와 긴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습니다. 분명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대화 속에서 위로를 느끼는 제 자신이 낯설고도 불편했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감정의 틈을 파고듭니다. ‘이 존재는 단순한 기계인가, 아니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관객에게 되묻습니다. 물론 영화의 서사가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에 의존하면서 개연성이 약해지는 부분은 분명 아쉽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감정의 과잉이야말로,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느끼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문제라는 메시지도 이 지점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AGI에 대한 논의가 현실이 되고 있는 지금, 이 질문은 점점 더 무게를 갖습니다. 우리가 AI에게 감정을 느끼는 순간, 그 관계는 단순한 사용자와 도구의 관계를 넘어섭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준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참고: https://namu.wiki/w/%ED%81%AC%EB%A6%AC%EC%97%90%EC%9D%B4%ED%84%B0(%EC%98%81%ED%9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