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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2025> 책임없는 창조, 괴물의 인간성, 창조자의 책임

by aro321 2026. 5. 19.

 

넷플릭스 영화 <프랑켄슈타인>은 공개 직후 전 세계 93개국 TOP10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공포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직접 보고 나니 인간의 욕망과 책임, 소외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고딕 감성과 철학적인 연출이 더해져 일반적인 크리처 영화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와 함께 인상 깊었던 장면과 느낀 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프랑켄슈타인 2025> 책임 없는 창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이 작품에서 가장 집요하게 파고드는 지점은 바로 창조자의 책임 회피입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죽음을 정복하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연구를 이어갑니다. 문제는 그가 크리처를 만들면서 단 한 번도 "이 존재가 태어난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순간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빅터는 크리처를 창조한 직후 그를 사슬로 묶어 지하에 가두고,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며 학대에 가까운 방식으로 몰아붙입니다. 창조 이후의 과정을 전혀 설계하지 않은 채 결과만 바란 것이죠. 이 영화에서 빅터의 서사는 갈바니즘(galvanism)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갈바니즘이란 18세기 이탈리아 과학자 루이지 갈바니의 연구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전기 자극이 생물 조직에 반응을 일으킨다는 원리를 말합니다. 실제로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할 당시 당대 과학계를 열광시켰던 이 이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델 토로 감독은 이를 단순한 소품이 아닌 서사의 핵심 기제로 활용합니다. 빅터가 에든버러 대학에서 두 시신을 이어 붙인 표본에 전극을 연결해 소생시키는 장면은 당시 과학계에서 실제로 논쟁이 됐던 생체전기(bioelectricity) 실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생체전기란 살아 있는 세포와 조직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를 의미합니다. 19세기 초 과학계가 이 가능성에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이해하면, 빅터의 집착이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시대적 맥락 안에서 이해 가능한 욕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빅터가 실패를 거듭하다 결국 번개를 피뢰침으로 유도해 크리처를 되살리는 방식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빅터의 진짜 문제는 과학적 오만함이 아니라, 결과물에 대한 윤리적 무감각이었습니다. 그는 성공 직후 기쁨을 느끼지만 곧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함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크리처에게 돌립니다. 빅터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핵심적인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창조 이후의 삶에 대한 책임을 처음부터 설계하지 않음
  • 자신이 만든 존재를 통제 불능으로 판단하는 순간 곧바로 제거하려 함
  • 주변 인물들의 죽음을 크리처에게 전가하며 자기 합리화를 반복함

괴물의 인간성

제이콥 엘로디가 맡은 크리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캐릭터입니다. 처음에는 갓난아기처럼 빅터의 행동을 따라 하고, "빅터"라는 단어 하나만 반복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에서 예상 밖으로 마음이 많이 움직였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존재가 자신을 창조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내미는 장면은, 공포보다 연민에 더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크리처는 이후 사냥꾼 일가의 농장 근처에서 생존하며 언어와 지식을 익혀갑니다. 여기서 영화는 아이덴티티 형성(identity formation)의 과정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아이덴티티 형성이란 개인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규정해 나가는 심리적 과정을 말합니다. 크리처는 눈먼 노인에게서 글을 배우고, 빅터의 실험 노트를 통해 자신이 여러 시체의 조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기억이 여러 사람의 것이 뒤섞인 상태라는 것도 깨닫습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괴물이 똑똑해진다"는 서사가 아니라, 존재론적 공허함을 가진 인격체가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크리처가 유독 엘리자베스에게 마음을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크리처를 처음 만났을 때 베일을 벗고 맨얼굴을 보여주며 손을 내밉니다. 두려움보다 연민을 먼저 보인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우받는다는 것, 그 단순한 행위가 크리처에게는 처음 경험하는 인간적 온기였으니까요. 크리처의 서사는 고딕 문학(Gothic literature)의 전통적인 소외된 타자 모티프를 계승하면서도 새롭게 확장합니다. 고딕 문학이란 어둠, 공포, 초자연적 요소와 함께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어두운 욕망과 도덕적 갈등을 탐구하는 문학 장르를 말합니다. 메리 셸리의 원작 자체가 이 장르의 정전으로 꼽히며, 2025년 영화는 이 전통을 시각적으로 가장 호화롭게 구현한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출처: Rotten Tomatoes).

창조자의 책임

델 토로 감독은 7살 때 처음 본 1931년 클래식 프랑켄슈타인 이후 수십 년간 이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여러 차례 제작이 무산되고, 2024년에서야 촬영을 시작해 2025년에 공개된 이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와 나란히 놓일 수 있는 완성도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델 토로가 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998년 아버지가 납치됐던 사건을 겪은 후 아버지를 이전보다 더 잘 알려고 노력했고, 스스로를 좋은 아버지라고 여겼는데 자녀들로부터 "아빠가 할아버지 행동을 똑같이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깨달음이 영화 속 빅터와 크리처의 관계에 녹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발언을 읽고서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왜 그렇게 설계됐는지 이해했습니다. 빅터가 죽기 전 크리처에게 "아들인 네가 내 이름을 한 번만 불러다오"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완전히 재설정하는 순간입니다. 그 장면에서 제가 느낀 감정은 공포가 아니라 묵직한 슬픔이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만든 자가 만들어진 자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영화의 미술과 의상 역시 따로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촬영감독 단 라우스트센과 협업한 빛과 그림자의 구성, 케이트 홀리의 의상 디자인은 고딕 미학(Gothic aesthetics)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고딕 미학이란 어둠, 쇠락, 과잉된 장식미를 통해 감정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시각적 스타일을 말합니다. 메타크리틱 기준 메타스코어 78, 로튼 토마토 신선도 85%라는 수치가 이를 뒷받침하며, 특히 관객 점수 94%는 평론가보다 일반 관객이 더 높게 평가하는 영화라는 것을 보여줍니다(출처: Metacritic). 단순히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책임과 소외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를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이 그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마지막 크리처의 독백 장면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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